장흥문화원

4. 삶의 현장, 문화와 신앙과 활동상/문화

 

 

●1946년 보림사 대웅전, 좌축에 꼽아져 있는 나무기둥과 창성탑비에 새겨진 나라에서 원표 대덕에게 하사한 신역 표시의 장생 표주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전하며 대웅전 뒷편에 명부전의 일부가 보인다.


●1965년 대적광전과 삼층석탑 2기, 석등

 

 

●1946년경 석탑.석등

 

 

●장흥향교
향교는 조선시대의 지방관립교육기관으로 장흥향교는 조선초기에 건립한 뒤로 한번도 자리를 바꾸지 않았다고 한다.

 

 

●장흥향교, 군 유도회 주최. 윤리대강연회(1984.5.15)

 

 

●제1회 경로노인위안회(1985.9.23)

 

 


동학 천도교는 외래종교가 아니고 우리 민족의 정신지주이기에 일제는 더욱 탄압을 가중했다.갑오동학혁명혈사에 얽힌 빼놓을 수 없는 반세기 악몽속에서 공을 남기고 가신 선대들의 흔적 장흥천도교당 모습이다. 지금은 초라한 상태로 쓰러져 가는 모습이다.

 

 

●1916. 8. 26 장흥읍 교촌리 32번지에 신축(계수나 신축이 아쉽다)

 

 

●장흥천주교공소 교유들 소풍.1960년 장흥공원, 아일랜드인 파흐린 신부, 서석보(서원봉 부), 곽동흠(곽남규 부), 김길곤, 엄회장, 박근홍, 박귀용, 민경찬, 허영기

 

 

●당시 식장으로 장흥읍교회 예배당을 많이 이용했다(1948년)

 

 

●장흥교회 주일학생들, 신상예배 기념(1950. 5. 28 부산 부춘정 앞)

 

 

제 1회 보림문화제-군민축제(1970.4.19) 모든 군민이 참여해 시가행진을 하고 보름 줄다리기(고싸움), 강강술래, 농악놀이 등 각종 민속행사와 체육행사가 곁들여진다. 지금은 격년제로 한번은 실내행사로 군민의 날 기념행사로만 치루어 진다.

●농악

 

 

●시가행진

 

 

●행사전경(예양강변)

 

 

●강강술래

 

고싸움(보름 줄다리기)

 

전일그라프(전남일보 발행 화보집)에 실린 보림문화제 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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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년 10월 13일 건산리 505번지로 옮겨온 장흥국민학교, 1930년 후반기 졸업식

 

 

●장흥보통국민학교 신센지 선생과 학생들(1942)

 

 

●장흥국민학교 졸업소풍(1950, 신흥리)

 

 

●1956년 장흥국민학교

 

●1950년초 장흥국교 선생님  

 

 

●봄 학예회를 마치고 (1950)

 

 

●장흥동국민학교 도지정 근로생산 연구학교 당시 마교장선생

 

 

 

 

●1947년 4월 15일 사자산 아래의 南齊學院에서 가교로 개설했던 장흥동국민학교

 

 

●장흥서국민학교 선생님들(1950)

 

 

●6.25직후 교실이 불타고 가 교사 상태인 유치보통학교

 

●부산면 공립보통학교(1945)졸업사진. 교장 淸水淸義,英本基(朴基鳳),西原麟 (韓,麟敎),文汝哲,金在,金貞禮順, 金淑煥,金善禮,당시반장 邊乙植,

●부산면 국민학교 김정순 선생과 신입생

 

●기독교청년회에서는 유치원도 주일학교로 이용하다가 그후 흥업회에서 매입, 황만일이 주택으로 사용했다.
1946. 7. 10 장흥유치원, 장성철 목사(왼쪽 3번째), 강일용 장로(왼쪽 2번째), 김동채( 당시 양복점 왼쪽 1번째), 당시 장흥읍교회는 예양리에 일본절이 있었다.

 

 

●대한기독교 장노회 장흥읍교회 에덴유치원 제1회 졸업식(1956. 3)

 

 

●1955년 대덕중학원으로 첫 졸업생을 냈다

 

 

●대덕읍 신리에 소재된 곳으로 6.25이후 학교 자체노력으로 염전으로 조성하여 염을 생산하였으나 현재는 답으로 전환되어 학교 재산으로 관리되어 있음.

 

 

●대덕중학교 최초 교사 전경(1952년). 본 건물은 장흥어업조합 사무실로 준공되었으나(1945년) 사용하지 못하고 해방을 맞아 교사로 사용되었다(자료제공: 대덕중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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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교육청 청사 신축낙성기념(1959. 6. 4 엄을준 교육장) 개식사하는 엄을준 교육장

 

 

방명,감사장 전달

 

 

 

 

완공된 장흥중고의 모습(1946)

 

 

장흥중 무용반, 지도교사 장선생과 함께

 

 

1946. 10. 9 인가를 받아 건산리에 터를 잡고 신축 기공을 축하하는 장흥중학교( 당시 장순섭 교장)

 

 

보림사를 찾은 학생들(한국전쟁으로 불타기 전의 국보 대웅전 모습이 보인다)

 

 

 

장흥중학교 한상필 교감과 학생간부진이 함께(1953. 3. 25)

 

 

 

1948 장흥중학교 교정(향보단 대회 후)

 

 

 

1953. 3. 25 6회 장흥중학교 졸업식. 지금은 자취를 감춘 밴드부. 당시 악기를 마련하기 위해 재학생들이 보리 닷되씩을 거출하여 악기를 마련하였다. (당시 임종대교장)

 

 

장흥여자중학교 기공식(1966. 3. 7)

 

 

 

장흥여자중학교 하교하는 모습

 

 

 

 

장흥여중 신축교사에서 조회

 

 

191051일부터 남외리 1번지에 위치했던 장흥국민학교(당시 장흥공립보통학교)에서 33회 졸업생을 배출하고 현 건산리 소재로 이전했다. 장흥공립보통학교 24회 졸업사진.

 

 

 

장흥국민학교 본관, 후관 전경(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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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 6. 12 장흥지원 합의부 승격 기념식

 

  1972년 신축한 법원청사

7대 나순채 지원장

  법원지원은 1909111일 광주지방재판소 장흥구재판소로 처음 설치(통감부)하였다가 191241일 광주지방법원 장흥지원, 194711일 광주지방심리원 장흥지원(미군정청). 194861일 광주지방법원 장흥지원이 되었다.

1949926일 법원조직법에 의해 합의지원으로 승격되었고 198121일 각급 법원 설치와 관할구역에 관한 법률에 따라 보성군이 순천지원으로 198211일에는 영암군이 목포지원 관할이 되었다.

장흥읍 남동리 88번지에 소재한다.(초대 지원장은 김풍일, 사진은 나순채 전 지원장)

 

 

승격 직후 기념촬영

장흥농산물 검사소 직원들

1949126일 농림부령 제3호로 국립농산물검사소(농림부) 광주지소 장흥출장소로 설치(장흥읍 건산리 715번지). 사진상의 건물은 1968년에 헐리고 그 자리에 콘크리트 스라브 단층건물이 들어섰다가(12.31)19879163층 건물을 신축했다(초대 소장은 김옥진)

 

 

장흥우편전신취급소

1901815일 광주우체사 장흥지사로 출발하여 1909717일 장흥우편전신취급소가 되어 전신업무를 취급했다. 처음에는 장흥읍 동동리 경찰서 무덕관밑에 있었으나 19171021일 남동리 43번지로 옮겼다가 196528일 건산리 715번지(2,1.974)로 옮겼다. (초대 우체국장은 정두채)

 

19097월 전신개통기념 직원

 

대덕 신월우체국(1954년경)

신월우체국은 1935325일 대덕면 신월리 118번지에 신월우편취급소로 개국했는데 194771일 신월우체국으로 개칭되었다. 사진상의 건물은 1961년 헐리고 그 자리에 스레트 우진각 청사를 지었다가 1985년 연정리 394번지에 슬라브 2층 건물을 신축 이전했다.

 

 

조선생활품영단 전라남도지부장흥군 출장소 장흥식량사무소 직원들

 

일제 때 장흥군 산업조합 직원들 (현 흥성공장 입구)

해방 후 장흥군 산업조합 직원들

 

광복전

광복후 산업조합장 김창봉

 

1918. 6. 29에 설치된 장흥금융조합. 장흥농협군지부로 활용되다가 1981년도 건산리로 이설하고 이후 의료보험조합으로 이용되었다.(현재의 남산골음식점)

1938년 장흥읍지(무인지)에 장흥금융조합외에도 장평과 고읍(관산)금융조합의 현황이 기록되어 있다. 장흥금융조합의 조합원은 2515. 예금은 10938명이 356,481원이었다.

 

 

1952년에 설립된 조흥은행. 호남의 군단위에서 지역경제를 담당하던 곳으로 1981228일 광주은행으로 넘겨졌다.

 

장흥 어업조합사무실 1940

어업조합은 1917년 장흥수산조합이 설립되고 19271111일 장흥군 해태조합으로 개편되었으며 194651일 장흥어업협동조합으로 개칭되었고, 1962년에는 관산어업협동조합을 통합했다. 197741일 장흥군 수산업협동조합으로 개칭되고 1982년에는 본소가 회진에서 장흥읍 건산리로 이전했다.

 

 

김만들기

바다에서 따온 생김으로 김을 만들고 있다. 당시 귀한 부식이었던 김을 만드는 일도 어촌 아낙의 일거리였다.

 

 

장흥군 어업조합병원(설립당초, 1937년경)

 

1921 년에 설치된 토목관구 직원들 19506월 사무소 신축 기념사진(지금의 농협군지부 자리)

土木管事務所는 도지사 산하 도 건설과 소속으로서 전라남도에 4개소 (광주,순천,장흥,영산포)를 배치되어 주로 토목사업(도로,하천)을 주관하여 왔음(제보: 대한노인회 장흥군지회장 申枓雨)

 

 

미 군정 당시 토목관구 소장 송별기념

 

장흥군내 읍면의원의 기념촬영 (장흥읍사무소 1958.1.5)

 

고읍면(현 관산읍) 사무소 직원과 건물전경 (1923. 9. 18)

 

 

유치면 공의진료소, 무의면에 세워진 의료기관.당시 의사가 있었다.(1950년대, 한국전쟁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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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강상구(1945~)

 

 

 

 

장흥군 부산면 출생.

 

등단

2004년 <공무원 문학>시 등단

2005년 수필로 등단

 

저서

<햇살이 길게 누울 때>

 

 

활동사항

대한민국공무원인협회 회원 

전남대학교 대학원 경영학과 박사과정 수료

동양고전 연구원장 역임_동양사상과 한문문학의 심층적 연구, 시문학 공부

KT호남 본부장 역임

한문연구가

 

 

그리움의 껍질

 

그리운 것 어디

지나간 세월만이랴

기왓골 틈에 돋아난 기왓솔

내 화판 위에서 안개비 젖어가며

소쩍소쩍 소쩍새 울음 울어가며

밤새 일구어낸 젖빛 새벽 만이랴

팔레트 끝에 피어나는 아침햇살

하얀 붉은 덩굴장미 기어오르는

 

어디 어린 날의 추억뿐이랴

내 붓 끝에서 돋아나는 고향

빗소리에 일어나 어루만지는 사염의 숲속

흐르는 강물에 마음을 담그면 다시 일어서는

들꽃풀꽃 향기 잊을 수 없는

넘치는 사랑

 

내 아끼던 것들

내 비늘을 찢고 사리는

햇살과 바람과 눈과 비

나를 괴롭히던 폭풍우까지도 그리운

그리움의 껍질 나의 옛집

그리고 잊혀지지 않는 추억

그리움의 창살에 부딪혀

그리움의 피가 줄줄 흐르네

 

그리운 것 어디

지나간 세월만이랴 

 

 

관련기사_https://blog.naver.com/kmts9/220623816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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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한동림(1968~)

 


 

장흥군 회진면 출생.

 

등단

1995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소설 [변태시대] 당선

 

저서

2004 <유령>문학동네

2008 <달꽃과 늑대>문학동네

 

9년만에 묶은 첫 결실에는 작가의 곰삭은 문학적 진정성이 잘 녹아있다. 진정성이 응집된 곳은 '기억'이다. 표제작 등 8편의 단편 속 주인공들은

문득 마주친 현실의 한 장면에서 어두운 과거를 떠올리며 애써 잊으려 눌러두었던 고통스러운 '기억의 강'을 건너간다. 그러나 그 수렁에서 헤어 나올 방법은 잘 보이지 않아 여전히 힘겹다.

 

 밤늦은 시간의 벗느느 언제나처럼 눅진한 눌 냄새를 담고 있었다. 우산을 접고 버스에 오른 나는 흐트러진 자세로 앉아 있는 취객들을 지나쳐서 빈좌석이 남아 있는 버스 뒤쪽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닷새째 계속되는 야근으로 지칠대로 지쳐있던 탓에 나는 의자에 앉기가 무섭게 졸기 시작했다.

 버스의 흔들리메 몸을 내 맡기고 있던 내가 정신을 추스린 것은 옷가게와 카페가 밀집해 있는 대학가에 버스가 정차했을 때였다.

-<귀가>중에서

 

 

관련기사_ https://news.naver.com/main/read.nhn?oid=032&aid=0000052024

출처_ 장흥천관문학관

        장흥별곡문학동인회'장흥의 문학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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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한강(1970~)

 

등단

1994 년 서울신문 '붉은 닻' 등단

 

저서

1995 <여수의사랑>문학과 지성,1998 <검은사슴>문학동네

1999<아기부처>개미,2000<내여자의 열매>창작과 비평

2001<아홉게의이야기>문학동네,

2002 <그대의차가운손>문학과지성,

<내이름은태양꽃>문학동네

2003 <붉은꽃이야기>열임원

<사랑과사랑을둘러싼것들>열림원

2005<몽고반점>문학과사상

2006<천둥꼬마선녀번개꼬마선녀>문학동네

2007 <채식주의자>창작과비평

<가만가만부르는노래>비채

2008 <눈물상자>문학동네

 

수상

1995 한국일보 우수소설가,

1999 한국소설가협회 한국소설문학상,

2000 문화관광부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2005 29회 이상문학상 대상

2010 제13회 동리문학상
2015 제15회 황순원문학상
2016 맨부커상 인터내셔널부문 (소설 채식주의자)

2018 제12회 김유정문학상

2019 제24회 아르세비스포 후안 데 산 클레멘테 문학상  

 

 

 

태어나 두 달이 되었을 때
아이는 저녁마다 울었다
배고파서도 아니고 어디가
아파서도 아니고
아무 이유도 없이
해질녘부터 밤까지
꼬박 세 시간

거품 같은 아이가 꺼져버릴까봐
나는 두 팔로 껴안고
집 안을 수없이 돌며 물었다
왜 그래.
왜 그래.
왜 그래.
내 눈물이 떨어져
아이의 눈물에 섞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말해봤다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닌데
괜찮아.
괜찮아.
이제 괜찮아

거짓말처럼
아이의 울음이 그치진 않았지만
누그러진 건 오히려
내 울음이었지만, 다만
우연의 일치였겠지만
며칠 뒤부터
아이는 저녁 울음을 멈췄다

서른 넘어서야
그렇게 알았다
내 안의 당신이 흐느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울부짖는 아이의 얼굴을 들여다보듯
짜디짠 거품 같은 눈물을 향해
괜찮아

왜 그래, 가 아니라
괞찮아.
이제
괜찮아.

 

 

*장흥군 회진면 출생 소설가 '한승원'작가의 딸 

 

관련기사_ http://www.donga.com/news/article/all/20190527/95708166/1

출처_장흥천관문학관

        장흥별곡문학동인회'장흥의 문학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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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기서 글을 쓰시는분들은 항상 느끼는거지만 글을 정말 잘쓰시는것같아요. 아직 저는 많이 부족한것같습니다. 그래도 제 블로그에도 숨은맛집들이 소개되어있으니 시간되실때 놀러와주세요. 코로나 조심하시구여!!! 마스크 꼭 잘 끼고 다니세요!

시인 최현(1946~)


장흥군 장흥읍 출생.

등단

1995년 <창조문학>

1996년 <한맥문학>

 

저서

만가-바람, 나무, 바위, 그늘

 

활동사항

창조문학가협회 회원

한맥문학가협회 회원

한국통신 홍보실 근무

 

최현 시인은 인간의 근원적인 서정인 그리움의 정서를 아름답게 표현하는 시인이다. 뿐만 아니라 '정서의 등가물'인 시를 쓰기 위해 늘 새로운

언어를 탐색하고 있다.

 

 

만가

-바람,나무, 바위, 그늘

깊은 밤 외롭다 무서워 말고

한겨울 시리다 떨지 마소서

우리 모두에게 약속된 안식의 장소

그 곳 큰 사랑으로 일구어

꽃처럼 지내소서

향기로 퍼지소서

 

바람이고 싶다던 당신은

모든 것 흩어진 허공에

잡힐 듯 희미한 순간입니다

 

나무이고 싶다던 당신은

푸른 땅 머무는 저 끝에

하얗게 쌓이는 메아리입니다.

 

바위이고 싶다던 당신은

그리움 뿌려진 길섶에

못내 아쉬운 침묵입니다

 

구름이고 싶다던 당신은

빈 마음 사위는 창가에

속으로 젖는 빗물입니다

 

따스함 우러나는 그 말씀들

미더움 배어드는 그 행동들

이제는 생시인 듯 한가닥 꿈으로 남아

정녕 잊을 수가 없습니다.

 

아득한 세월

그 먼 세상

만남의 문 열어

빛 되어 보이시고

소리되어 들리소서

 

 

 

출처_장흥천관문학관

       장흥별곡문학동인회 '장흥의 문학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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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온라인 기념회 계획
삶의 무게 눅진있게 표현
장흥문화공작소 제작·계획

 

장흥군 용산면 월림마을 할머니 6인방이 '할매들은 시방'이라는 합동 시화집을 냈다.

왼쪽부터 김기순, 정점남, 위금남, 박연심,백남순, 김남주 할머니.

 

팔순이 넘은 장흥 시골 할머니들이 자신들의 인생을 돌아보며 쓴 시들이 책으로 엮여 세상에 나왔다.

주인공들은 장흥군 용산면 월림마을의 김기순(81)·김남주(91)·박연심(80)·백남순(85)·위금남(82)·정점남(80) 할머니.

할머니 6인방은 인문활동가 황희영씨의 기획·제작으로 '할매들은 시방'이라는 합동 시화집을 출간했다.

장흥군 월림마을 할머니 6인방이 발간한 시화집

 

월림마을 할머니들은 지난해 6개월 동안 '두근두근 내 생애 첫 시와 그림' 프로그램에 참여해 이번에 시화집을 완성했다.

이번 시화집은 고난의 시대를 견디며 살아온 할머니들의 삶의 무게에서 눅진하게 우러나왔다. 배운 한글로 자신들의 삶을 생생한 언어로 써 내려간 것이다.

활 활동가는 "할머니들에게 처음부터 '시집을 내겠다'고 했으면 부담이 커 생생한 언어의 작품이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며 "유명 시를 읽고 필사도 해보면서 영감을 얻고, 시를 연습하는 과정도 거쳤다"고 밝혔다.

가장 나이가 많은 김남주 할머니는 시 '아흔이 되도록 살아도'에서 "사는 것이 여전히 기쁘다"고 고백했으며, 김기순 할머니는 '내 친구, 고양이 깜동이에게'에서 "밥 삶아 줄게 나 두고 죽지 마"라며 노년의 고독을 내비치기도 했다.

'꽃게만도 못한 인간들'을 쓴 박연심 할머니는 "인생 못댄 것들은 ~죽어버려라"고 시원한 한방을 날린다.

위금남 할머니는 '욕심 부릴 게 없다/곰방 죽을 거니께/새끼들 다 잘 사니께'이라며 '욕심'이란 작품에서 의연하게 말하고, 정점남 할머는 '참새들'에서 보리를 따먹다 자신에게 들켜 날아가는 참새를 보며 미안해하는 마음을 표현했다.

백남순 할머니는 '사랑'이란 작품에서 '결혼 초 9년 동안 5일 밖에 남편을 보지 못했다'며 '85년의 세월을 살아오고도 아직 사랑을 모른다'고 고백했다.

시화집을 기획한 황 활동가는 "228쪽의 책에는 더도 덜도 없이 할머니들의 삶이 그대로 담겨있다"며 "이 시화집은 무엇보다, 태어나 처음으로 시를 써보고, 그림을 그리는 과정을 통해 할머니들 가슴 속에 품고 있었던 생의 에너지가 자연스레 표출되고, 할머니들의 몸과 마음의 상처가 회복되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출간 후 곧바로 출판기념회를 가지려 했지만 코로나19로 여의치 않아 온라인 출판기념회를 계획 중이다"며 "할머니들은 아직 책이 나온 지 모르고 있어 영상을 통해 가족들의 축하 메시지 등 깜짝 파티를 포함한 다양한 이벤트를 계획해 다음달 말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할매들은 시방'은 문화체육관광부가 후원하고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주관한 '생활문화시설 인문프로그램'에 장흥문화공작소가 추진한 '두근두근 내 생애 첫 시와 그림' 프로그램이 더해져 탄생했다.

장흥문화공작소는 앞으로도 지역 문화활동가와 지역민들이 함께 하는 프로그램을 확대해 지역의 문화적 역량을 강화하는 데 노력할 방침이다.

출처_http://www.honam.co.kr/detail/itK7va/600520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주관한 '생활문화시설 인문프로그램'은

 장흥문화원이 2018년 공모사업으로 진행한 사업이였습니다.


//이만하면 행복하다_차순님

순님아
나는 왜 온몸이 아풀까
남들은 다 건강한대
탄식을 했다가
무쇠도 오래되면 닳아지는대
육남매 자식을 먹이고 입히고 가르치다보니
내몸이 골병이 들었구나
그래도
이만하면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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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 조계춘(1948~)

 

 

 

장흥군 장평면 출생

 

등단

2004년 <공무원 문학> 시 당선

 

저서

2004 <시의 나라 시의 마을에서> 공저

2005 <내 마음에 흐르는 강물> 태극

2007 <내 사랑하는 것과의 대화> 태극

 

활동사항

서울환경연합 회원

조선대학교 대학원 교무과 근무

통계청 근무

농업협동조합 장흥군지부 근무

 

 

이름모를 텃새 한 마리

저만치 앞서서 산문으로 들어간다

 

대웅전 요사채가 가지런히 서 있는데

흐드러진 백일홍

올벼가 날때까지 그대로였으면 좋으련만

산사 뒷자락 비자나무들이 솔잎처럼 푸르구나

 

땅거미 짙어오고

티없이 맑은 밤이 품에 가득 안겨오는

풍경소리 청아한 보림사의 하룻밤

 

봉덕리 마을어귀

개짖는 소리

은어떼를 따라 탐진댐 강심을 맴돌고 있네

 

<보림사>전문

 

 

출처_장흥천관문학관

       장흥별곡문학동인회'장흥의 문학'

 

관련기사_ http://www.jh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52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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